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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성로와 간성 복원

No
55
작성자
오용순
조회수
727
걷고 싶은 거리 『간성(間城)돌담길』.
청람(靑藍) 오 용 순
조선시대 본디 제주성(濟州城)은 동쪽으로는 남수각에서 산지천 서안(西岸)을 따라 북성교로 이어졌다.
1565년(명종 10) 6월 당시 114대 곽 흘(郭屹) 제주목사는 동쪽 동산 위에서 보면 제주성내가 한눈에 보여 방어적 측면에서 산지천 서안변(西岸邊)의 성(城)을 허물어 제주읍성을 동쪽 동산 위로 확장하자 폭우 때마다 뚝의 역할까지 하던 성(城)이 없어져 산지천이 범람하면 이로 인해 성안으로 침수 피해가 자주 발생했다.
이로 인하여 민가가 침수되는 등 재산피해를 당하자 성안사람들은 옛 성을 따라 성곽을 다시 쌓기를 소망해 왔다.

그로부터 215년 후에 1780년(정조 4) 결국 김영수(金永綬) 235대 제주목사는 범람으로 홍수를 막기 위하여 옛 성터의 성곽 즉 산지천 서쪽 변을 따라 이중으로 제방용 성곽을 길이 551보(약 680ⅿ), 높이 9척(2.7m)의 간성(間城)을 쌓았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성(城) 사이에 성(城)을 쌓았다 하여 간성(間城)이라 한다
그리고 간성(間城) 남북에 두 개의 문을 축조(築造) 개설하여 남문을 백성을 소생시킨다는 뜻의 남문인 소민문(蘇民門)과 복을 받는다는 뜻의 북문인 수복문(受福門)을 축조. 산저교(山低橋)를 광제교(光霽橋)로 개칭했으며 여기의 소민문(蘇民門)이 옛 동문(東門)으로 추정한다.
1847년(헌종 13) 이의식 목사는 수복문을 중인문(重仁門)으로 개편하였으며 일제강점기인 1914년 중인문(重仁門)이 먼저 훼철되고 이어 1915년 소민문(蘇民門)이 훼철되어 오늘날 간성(間城)의 자취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이에 따라 동문로타리 제주신협 맞은편의 옛 분수대가 있던 터에서 북쪽의 동문교 왼쪽 골목에서부터 광제교 - 북성교 - 산지교 - 용진교까지 거리의 이름을 간성로(間城路) 라 정하고 또한 옛 간성(間城)을 복원하고 기회에 산지천에 걷고 싶은 요소가 없으므로 이어 산지천의 동안(東岸)에서 다시 동문교까지 청계천처럼 산책로와 어린이들의 물장구치며 놀 수 있는 곳을 조성하여 덕수궁돌담길에 청계천산책로를 합친 것 같은 아름다운 "간성돌담길"을 건설하고 또한 간성로에는 곳곳에 제주의 왕벗꽃을 심어 그 정취를 더한다면 누구나 걷고 싶은 거리가 되어 새로운 명소의 “걷고 싶은 거리 간성돌담길"로 산지천 가로의 활력을 찾아야 한다.
yongduam@korea.com
 
등록일
2019-03-28 04: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