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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녀

No
52
작성자
오태령
조회수
1276
우리의 흔적인 잠녀(潛女)를 다시 찾아 쓰자.

1105년 고려 숙종 10년 '탐라가 고려의 한 군(郡)인 탐라군(耽羅郡)으로 개편되면서 구당사(句當使) 윤응균(尹應均)이 내도(來島)해 남녀 간의 나체 물질 조업에 금지령을 내렸으며 남성 나잠인(裸潛人)들을 가리키는 포작(鮑作)은 주로 깊은 바다에서 전복(全鰒)을 따고 여성 나잠인들을 가리키는 잠녀(潛女)는 미역, 청각 등 해조류를 채취했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잠녀(潛女)'라고 쓰고 또 불러왔다.

1760년 3대가 제주에 유배왔던 북헌 김춘택이 『북헌집(北軒集)』 권 3에 「잠녀(潛女)라는 사람이 있는데 잠수하여 미역을 캐거나 전복을 따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그런데 전복을 따는 것은 미역을 채취하는 것에 비하여 매우 어렵고 고되어 잘못하다간 그 얼굴이 시커멓고 초췌하게 되어 걱정과 고난으로 죽다가 살아난 모습을 하게 된다. 내가그녀를 위로하고는 일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갯가에 가서 땔감을 놓고 불을 지펴 몸을 따뜻하게 합니다. 그후 가슴에 곽(태왁)을 붙이고 끈으로 짠 주머니(망사리)를 곽에 묶습니다. 이전에 잡았던 전복껍질을 주머니에 채우고 손에는 쇠꼬챙이(빗창)를 잡고 이리저리 헤엄치다가 마음 내키면 물속에 잠깁니다. 물 밑에 이르러 한 손으로 바윗돌을 쓸어보면 전복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복이 돌에 단단히 붙어있어 즉시 딸 수 없고 또 색깔이 검어서 돌과 혼동하게 됩니다. 예전의 껍데기(본조겡이)를 거꾸로 올려놓아 그곳을 알 수 있게 한 뒤 숨이 급해지면 즉시 나와 곽을 안고 숨을 쉽니다. 그 소리가 휘이하며 오래 내는 것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그런 후에 생기가 돌면 다시 물에 잠겨 먼저 알아두었던 곳에 가서 쇠꼬챙이로 따서 망사리에 넣고 물 밖으로 나옵니다. 무릇 전복 하나를 따려다가 몇 번이나 죽을 뻔한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물 밑의 돌은 간혹 모질고 날카롭기도 하여 접촉하였다가 죽기도 합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2017년 4월부터 진행된 한라일보 기획기사인 “한국 해녀를 말하다”를 보면 지금도 경상도지방에 출가(出稼)한 우리잠녀의 후손들은 모임 명칭으로 잠길 잠(潛)자를 넣은 잠수, 잠녀라는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 예로 거제시에서 잠녀 역사는 1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데 이곳의 한라잠수(潛水)연합회는 이순덕(60. 강정출신) 회장을 포함해 6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직도 잠수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요즘 쓰이고 있는 해녀 「海女, 아마(일어발음)」는 일본 글자요 단어로 일제가 글자마저 자신들의 문화를 강요한 결과이며 잠녀(潛女)는 일본이 강제 병합한 시대의 빼앗긴 우리의 말이요 글자이므로 우리는 우리의 흔적인 잠녀(潛女)를 다시 찾아 쓰고 불러야 한다.
(수필가. yongduam@korea.com )

등록일
2019-03-14 18:5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