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Vol.85 추억이 예술로 피어오르다, 산지천 갤러리
- No
- 26
- 작성자
- 경영기획실
- 작성일
- 2023-12-29 16:51:58
- 조회수
- 73
본 내용은 재단 기관지 삶과 문화 겨울호에 게재됐습니다.
삶과 문화 겨울호(제84호)는 재단 홈페이지, 제주문화포털 제주인놀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갤러리 방문 시 무료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 추억이 예술로 피어오르다, 산지천 갤러리 "
글 김연주(문화공간양 기획자)
상상력을 자극하는 옛 건물
쓸모가 사라진 건물을 예술 공간으로 바꾼 사례는 이제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많아졌다.
더 이상 멀리 있는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을 예로 들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은 옛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이었고,
청주관은 연초제조창이었다. 더 가깝게는 제주시 원도심에 자리한 예술공간 이아가 있다. 이곳은 원래 제주대학교병원 건물이었다.
그렇다면 세계 곳곳에 유휴공간을 활용한 예술 공간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곳의 장소성과 역사성이 예술에 영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산지천 갤러리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유휴 공간을 되살린 예술 공간으로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예술의 영향력을 주변으로 확장해 가고 있다.
산지천 갤러리는 금성장과 녹수장을 고쳐 만든 공간이다. 항구가 옆에 있는 산지천 일대에는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가기 위한 여관이 많았다. 여관은 외지 사람이 주로 이용했지만, 금성장은 동네 사람도 많이 찾았다.
목욕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성장과 녹수장을 철거하지 않았던 이유는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금성장과 녹수장을 보며
옛 여관과 목욕탕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금성장과 녹수장이 이제는 그저 여관이나 목욕탕이었던 건물이 아닌
옛 시대상을 알려주는 일종의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화이트큐브(white cube)라고 불리는 보통 미술관이
나 화랑의 전시장처럼 산지천 갤러리도 흰색으로 벽을 마감했지만, 건물 곳곳에 역사가 쌓여있기에
주변의 맥락과 완벽하게 분리된 순수한 공간으로 전시장을 바라보기 어렵다. 아무리 벽이 희다 해도 그 뒤에 감춰져 있는 옛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여관과 목욕탕이었던 공간을 전시장으로 바꾸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금성장과 녹수장을 연결해 하나의 건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산지천 갤러리는 반듯하게 생긴 미술관과 같은 다른 전시공간과 달리 독특한 외관을 갖게 되었다.
자연채광이 아닌 인공조명을 주로 사용하는 전시장의 특성 때문에 안과 밖에서 창문을 막았지만,
일부 창문틀을 남김으로써 여관 건물의 특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전시장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는 기본 뼈대만을 남기고 대부분의 벽과 구조물을 없애버려서 옛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얀벽은 건물의 기능이 전시장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지만, 지금도 금호라는 두 글자가 남아있는,
높이 솟은 굴뚝은 목욕탕이었던 옛 정체성을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의 충돌이 산지천 갤러리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여관과 목욕탕이었기에 산지천 갤러리는 전시장으로서 어떤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최근 신축하는 미술관이나 화랑은 전시장 층고를 높게 하고, 작품 전용 엘리베이터를 따로 설치한다.
작품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지천 갤러리는 낮은 층고, 좁은 계단, 작은 엘리베이터로 인해 큰 작품을 전시할 수 없다.
또한, 층마다 공간 형태와 크기가 모두 달라서 자칫 잘못하면 전시가 산만해질 수 있다.
특히 1층이 내려다보이는 2층 전시실에서는 1층 카페의 소음까지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가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요소 때문에 설치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고, 공간의 특성을 잘 살리면 무척 흥미로운 전시가 된다.
그래서 작가와 전시기획자에게는 전시를 주저하게 만드는 쉽지 않은 공간이면서 한 번 쯤 도전해 보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다.
사진에서 동시대 미술로
산지천 일대를 대상으로 2013년 착공된 탐라문화광장 조성 사업은 산지천변으로 관광객을 모으려는 목적이 가장 컸다.
산지천 갤러리의 개관은 이러한 탐라문화광장 조성과 맥을 같이한다. 탐라문화광장에 관광객을 더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김만덕 기념관, 객주터와 함께 산지천 갤러리가 추진되었다. 김만덕 기념관과 객주터를 위해서는 새로 건물을 지었으나,
산지천 갤러리는 제주도가 매입한 금성장과 녹수장 을 활용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두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면
사진 전문 전시장으로 문을 열 계획이었다. 사진 전문 전시장이 없는 제주도이기에 그 필요성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고,
제주도 출신이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명망 높은 김수남의 이름을 따서 전시관을 열면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침 유족이 김수남 사진 작품, 사진 원판, 유품 등을 2017년 제주도에 기증한 점도 사진 전문 전시장 설립에 힘을 실어주었다.
김수남 전시관이 아닌 산지천 갤러리로 명칭이 확정되었지만, 사진 전문 갤러리를 표방하며 《김수남, 아시아의 바다를 담다 》를
개관전으로 그 출발을 알렸다. 이후 홍정표, 신상범 작가 등의 전시가 이어졌다. 그러나 2019년부터는 공모 선정전시, 후원전시 등이
늘어나면서 점차 사진을 넘어 다양한 동시대 미술이 선보이고 있다. 올해만 해도 4월에는 4 ·3 미술제, 5월과 6월에는 공모에서 선정된
우수기획 전시 《아마도, 황홀》, 7월과 8월에는 대관공모 선정전시인 오기영 개인전, 9월부터 11월까지는 탐라미술인협회 기획전,
아트페스타인 제주, 제주미술제 등 세 개의 후원전시가 열렸다. 사진전시는 줄었지만, 2층에 김수남관을 마련해 상설로 운영하고,
건물 외부에서 유리창을 통해 작품을 볼 수 있는 윈도우갤러리에 김수남 사진 작품 한 점을 거의 매달 교체해 전시함으로써
사진 전문 갤러리가 되고자 했던 초심을 지켜가고 있다. 공모로 우수한 전시를 선정해 소개하고, 의미 있는 전시를 후원함으로써
산지천 갤러리에서 다양한 경향의 흥미로운 작품이 전시되고 있어 관람객 입장에서는 전시를 보러 가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2020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산지천 갤러 리에서 열린 아트페스타 인 제주는 갤러리 밖 산지천 일대까지를 전시장으로 삼아
일상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작품을 마주하게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산지천변을 따라 작가와 작품을 소개 하는 청사초롱을 걸었으며,
물이 흐르는 천 한가 운데, 다리 위나 옆, 공원 등에 작품을 설치했다. 밤에는 산지천 갤러리 건물 외벽에 영상 작품을 상영해
그 앞을 지나던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는 예술은 삶을 신나게 만든다.
또한, 이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면서 산지천 풍경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즉 아트페스타 인 제주는 산지천 갤러리를 중심으로 산지천 일대가 예술로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원도심의 기억 그리고 미래
아트페스타 인 제주 외에도 4·3 미술제와 제주 미술제가 작년과 올해 산지천 갤러리에서 열렸다.
제주도 3대 전시라고 말할 수 있는 세 개의 전시가 모두 산지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셈이다.
또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생겨난 제주도의 낯선 풍경에 주목한 기획전 《아마도, 황홀》과 동양 전통 벽화 기법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고향 세화를 표현한 오기영의 개인전 《細花》 등도 주목할 만한 전시였다.
이러한 훌륭한 전시들이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산지천 갤러리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기획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산지천 갤러리가 추구하는바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우수한 전시 지원도 꼭 필요한 일이지만 전시 지원 자체가 산지천 갤러리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산지천 갤러리 웹사이트를 보면 “김수남(1949-2006) 작가의 기증작품을 연구하고, 다양하게 기획하여 선보이는 한편,
원도심을 주제로 한 실험적인 전시 기획 및 연계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기억을 수집하고 이를 문화예술 콘텐츠로 개발하여
다시 내뿜는 문화의 굴뚝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적혀있다.
문화예술 콘텐츠로 개발하는 작업이 산지천 갤러리에서 해야 할 일인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만,
원도심을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하거나 원도심의 기억을 수집하는 작업은 여관과 목욕탕이었던
낡은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산지천 갤러리로 다시 사용하는 목적, 다시 말하면 산지천 갤러리가 존재하는 이유와 관련된다.
금성장과 녹수장 건물에는 원도심의 기억이 오롯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원도심 관련 전시를 하고 기억을 수집한다는
목적을 분명히 해도 이를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예산이 부족하고 학예사가 없기 때문이다.
학예사를 둔다고 하더라도 한 명으로는 부족하다. 혼자서 김수남 작품 연구와 관련 전시를 기획하면서
원도심의 기억을 수집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기획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또한, 산지천 갤러리의 역할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논의하는 자리도 필요해 보인다.
산지천 갤러리 주변에는 김만덕 기념관 외에도 빨간 건물이 인상적인 아라리오 뮤지엄이 있다.
바로 옆 고씨주택은 책 방이 되었고, 탐라문화제 등 크고 작은 축제도 수시로 열린다.
산지천 갤러리는 주변의 문화·예술 공간과 문화 행사와 연계해 더욱 다양한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산지천 갤러리로 인해 예술이 산지천을 따라 흘러넘치는 미래를 꿈꾸어 본다.
삶과 문화 겨울호(제84호)는 재단 홈페이지, 제주문화포털 제주인놀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갤러리 방문 시 무료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 추억이 예술로 피어오르다, 산지천 갤러리 "
글 김연주(문화공간양 기획자)
상상력을 자극하는 옛 건물
쓸모가 사라진 건물을 예술 공간으로 바꾼 사례는 이제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많아졌다.
더 이상 멀리 있는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을 예로 들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은 옛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이었고,
청주관은 연초제조창이었다. 더 가깝게는 제주시 원도심에 자리한 예술공간 이아가 있다. 이곳은 원래 제주대학교병원 건물이었다.
그렇다면 세계 곳곳에 유휴공간을 활용한 예술 공간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곳의 장소성과 역사성이 예술에 영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산지천 갤러리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유휴 공간을 되살린 예술 공간으로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예술의 영향력을 주변으로 확장해 가고 있다.
산지천 갤러리는 금성장과 녹수장을 고쳐 만든 공간이다. 항구가 옆에 있는 산지천 일대에는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가기 위한 여관이 많았다. 여관은 외지 사람이 주로 이용했지만, 금성장은 동네 사람도 많이 찾았다.
목욕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성장과 녹수장을 철거하지 않았던 이유는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금성장과 녹수장을 보며
옛 여관과 목욕탕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금성장과 녹수장이 이제는 그저 여관이나 목욕탕이었던 건물이 아닌
옛 시대상을 알려주는 일종의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화이트큐브(white cube)라고 불리는 보통 미술관이
나 화랑의 전시장처럼 산지천 갤러리도 흰색으로 벽을 마감했지만, 건물 곳곳에 역사가 쌓여있기에
주변의 맥락과 완벽하게 분리된 순수한 공간으로 전시장을 바라보기 어렵다. 아무리 벽이 희다 해도 그 뒤에 감춰져 있는 옛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여관과 목욕탕이었던 공간을 전시장으로 바꾸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금성장과 녹수장을 연결해 하나의 건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산지천 갤러리는 반듯하게 생긴 미술관과 같은 다른 전시공간과 달리 독특한 외관을 갖게 되었다.
자연채광이 아닌 인공조명을 주로 사용하는 전시장의 특성 때문에 안과 밖에서 창문을 막았지만,
일부 창문틀을 남김으로써 여관 건물의 특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전시장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는 기본 뼈대만을 남기고 대부분의 벽과 구조물을 없애버려서 옛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얀벽은 건물의 기능이 전시장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지만, 지금도 금호라는 두 글자가 남아있는,
높이 솟은 굴뚝은 목욕탕이었던 옛 정체성을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의 충돌이 산지천 갤러리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여관과 목욕탕이었기에 산지천 갤러리는 전시장으로서 어떤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최근 신축하는 미술관이나 화랑은 전시장 층고를 높게 하고, 작품 전용 엘리베이터를 따로 설치한다.
작품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지천 갤러리는 낮은 층고, 좁은 계단, 작은 엘리베이터로 인해 큰 작품을 전시할 수 없다.
또한, 층마다 공간 형태와 크기가 모두 달라서 자칫 잘못하면 전시가 산만해질 수 있다.
특히 1층이 내려다보이는 2층 전시실에서는 1층 카페의 소음까지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가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요소 때문에 설치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고, 공간의 특성을 잘 살리면 무척 흥미로운 전시가 된다.
그래서 작가와 전시기획자에게는 전시를 주저하게 만드는 쉽지 않은 공간이면서 한 번 쯤 도전해 보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다.
사진에서 동시대 미술로
산지천 일대를 대상으로 2013년 착공된 탐라문화광장 조성 사업은 산지천변으로 관광객을 모으려는 목적이 가장 컸다.
산지천 갤러리의 개관은 이러한 탐라문화광장 조성과 맥을 같이한다. 탐라문화광장에 관광객을 더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김만덕 기념관, 객주터와 함께 산지천 갤러리가 추진되었다. 김만덕 기념관과 객주터를 위해서는 새로 건물을 지었으나,
산지천 갤러리는 제주도가 매입한 금성장과 녹수장 을 활용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두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면
사진 전문 전시장으로 문을 열 계획이었다. 사진 전문 전시장이 없는 제주도이기에 그 필요성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고,
제주도 출신이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명망 높은 김수남의 이름을 따서 전시관을 열면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침 유족이 김수남 사진 작품, 사진 원판, 유품 등을 2017년 제주도에 기증한 점도 사진 전문 전시장 설립에 힘을 실어주었다.
김수남 전시관이 아닌 산지천 갤러리로 명칭이 확정되었지만, 사진 전문 갤러리를 표방하며 《김수남, 아시아의 바다를 담다 》를
개관전으로 그 출발을 알렸다. 이후 홍정표, 신상범 작가 등의 전시가 이어졌다. 그러나 2019년부터는 공모 선정전시, 후원전시 등이
늘어나면서 점차 사진을 넘어 다양한 동시대 미술이 선보이고 있다. 올해만 해도 4월에는 4 ·3 미술제, 5월과 6월에는 공모에서 선정된
우수기획 전시 《아마도, 황홀》, 7월과 8월에는 대관공모 선정전시인 오기영 개인전, 9월부터 11월까지는 탐라미술인협회 기획전,
아트페스타인 제주, 제주미술제 등 세 개의 후원전시가 열렸다. 사진전시는 줄었지만, 2층에 김수남관을 마련해 상설로 운영하고,
건물 외부에서 유리창을 통해 작품을 볼 수 있는 윈도우갤러리에 김수남 사진 작품 한 점을 거의 매달 교체해 전시함으로써
사진 전문 갤러리가 되고자 했던 초심을 지켜가고 있다. 공모로 우수한 전시를 선정해 소개하고, 의미 있는 전시를 후원함으로써
산지천 갤러리에서 다양한 경향의 흥미로운 작품이 전시되고 있어 관람객 입장에서는 전시를 보러 가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2020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산지천 갤러 리에서 열린 아트페스타 인 제주는 갤러리 밖 산지천 일대까지를 전시장으로 삼아
일상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작품을 마주하게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산지천변을 따라 작가와 작품을 소개 하는 청사초롱을 걸었으며,
물이 흐르는 천 한가 운데, 다리 위나 옆, 공원 등에 작품을 설치했다. 밤에는 산지천 갤러리 건물 외벽에 영상 작품을 상영해
그 앞을 지나던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는 예술은 삶을 신나게 만든다.
또한, 이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면서 산지천 풍경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즉 아트페스타 인 제주는 산지천 갤러리를 중심으로 산지천 일대가 예술로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원도심의 기억 그리고 미래
아트페스타 인 제주 외에도 4·3 미술제와 제주 미술제가 작년과 올해 산지천 갤러리에서 열렸다.
제주도 3대 전시라고 말할 수 있는 세 개의 전시가 모두 산지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셈이다.
또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생겨난 제주도의 낯선 풍경에 주목한 기획전 《아마도, 황홀》과 동양 전통 벽화 기법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고향 세화를 표현한 오기영의 개인전 《細花》 등도 주목할 만한 전시였다.
이러한 훌륭한 전시들이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산지천 갤러리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기획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산지천 갤러리가 추구하는바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우수한 전시 지원도 꼭 필요한 일이지만 전시 지원 자체가 산지천 갤러리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산지천 갤러리 웹사이트를 보면 “김수남(1949-2006) 작가의 기증작품을 연구하고, 다양하게 기획하여 선보이는 한편,
원도심을 주제로 한 실험적인 전시 기획 및 연계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기억을 수집하고 이를 문화예술 콘텐츠로 개발하여
다시 내뿜는 문화의 굴뚝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적혀있다.
문화예술 콘텐츠로 개발하는 작업이 산지천 갤러리에서 해야 할 일인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만,
원도심을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하거나 원도심의 기억을 수집하는 작업은 여관과 목욕탕이었던
낡은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산지천 갤러리로 다시 사용하는 목적, 다시 말하면 산지천 갤러리가 존재하는 이유와 관련된다.
금성장과 녹수장 건물에는 원도심의 기억이 오롯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원도심 관련 전시를 하고 기억을 수집한다는
목적을 분명히 해도 이를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예산이 부족하고 학예사가 없기 때문이다.
학예사를 둔다고 하더라도 한 명으로는 부족하다. 혼자서 김수남 작품 연구와 관련 전시를 기획하면서
원도심의 기억을 수집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기획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또한, 산지천 갤러리의 역할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논의하는 자리도 필요해 보인다.
산지천 갤러리 주변에는 김만덕 기념관 외에도 빨간 건물이 인상적인 아라리오 뮤지엄이 있다.
바로 옆 고씨주택은 책 방이 되었고, 탐라문화제 등 크고 작은 축제도 수시로 열린다.
산지천 갤러리는 주변의 문화·예술 공간과 문화 행사와 연계해 더욱 다양한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산지천 갤러리로 인해 예술이 산지천을 따라 흘러넘치는 미래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