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Vol.85 『내 생에 아름다운 인연』의 작가, 김순남
- No
- 24
- 작성자
- 경영기획실
- 작성일
- 2023-12-29 16:50:47
- 조회수
- 98
본 내용은 재단 기관지 삶과 문화 겨울호에 게재됐습니다.
삶과 문화 겨울호(제84호)는 재단 홈페이지, 제주문화포털 제주인놀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갤러리 방문 시 무료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 『 내 생에 아름다운 인연』 김 순 남 "
글 조선희(본지 편집위원)
깊은 계곡, 어두운 그늘 속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곱게 피어난 꽃들이 어찌나 곱고 감사한지
사는 게 힘들다고 투정부린 내가 미안하고 부끄러워졌지요, 한라산에서 만난 꽃 들이 준 깨우침이었어요
12년 만에 시집을 펴낸 김순남 시인을 만났다. 정색을 하고, 정식으로 마주앉는건 처음이다.
주로 행사장에서 눈도장 찍듯 잠시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는 나눠 봤어도 작정을 하고 만난 적은 없었다.
차림새로 봐서는 금방 한라산에서 내려온 듯, 아니 금방 한라산으로 올라 갈 듯한데
마주앉은 사람에게 나눠주는 호탕한 웃음과 따스한 눈길은 마치 몇시간째 한자리에 앉아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있는 것 같은 착각 아닌 착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김시인에게 ‘제주의 누이’라는 애칭을 붙인 이유를 단박에 알겠다.
새로 나온 시집의 제목은 『내 생에 아름다운 인연』. “선생님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인연은 무엇이냐?”고
우문(愚問)을 던지니 “그건 사람.”이라는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한라산 지킴이’, ‘들꽃시인’등의 이름으로 불려온 만큼
한라산이라거나 야생화라거나 그런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꽃보다 사람이라니,
이 대목에 서 떠오른건 그의 시 「야고」였다. 서로서로 기대고, 끼리끼리 내어주고,
그러고도 남는 외로움이 발그레 피어난 야고.
生, 죽을 결심을 내려놓다
애초에 죽으러 온 제주였단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지상에서 사라질 장소로 택한 곳이 한라산이었다고.
“죽음을 처음 생각한 때가 열네 살 무렵 톨스토이의 전기 『인생의 비극』을 읽고 나서였어요.
죽음만 생각한게 아니라 그즈음 내 꿈을 펼칠 곳이 그 어딘가, 짙은 산 그림자 너머 세상일 것 이라는 동경도 생겼지요.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취직한게 산부인과 무자격 간호조무사였는데 내가 시에서 썼듯이
‘유방의 용도도 알지 못하던 나이에/산부인과 진찰대를 닦아내는’일이더라고요. 그 뒤 여러 일자리를 거치면서 대학공부를 병행했는데
건강 때문에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자 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독일에 유학 가서 철학을 공부하겠다는 포부와 열망이 있었는데 정작 실현될 일이 아님을 알았지요.
죽을 작정으로 제주에 왔어요. 그동안 사서 모은 약을 챙기고 10원짜리 빵 한 개와 우유 한 갑, 늘 가지고 다니던 하모니카를 품고 한라산을 올랐지요.
그때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세 명이 같이 산을 올랐는데 결국 그들 때문에, 아니 그들 덕분에 죽지 못하고 돈내코 코스로 하산하게 되었지요.
나중에 들으니 충남대 건축학과 학생들이었고 또래 여자아이가 홀로 산에 오르는 모양새가 어쩐지 마음에 쓰였는데
마침 내가 죽기 전 마지막 의식(儀式)으로 분 올 드랭사인(Alld Lang Syne) 하모니카 연주를 듣고 나를 찾아 설득한 거지요.
내가 죽을 결심을내려놓게 된게 그들 덕분이니 참으로 고마운 인연으로 간직하고 있어요.”